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에미의 마음

들꽃향기. 2014. 6. 3. 12:57
    "" 에미 마음 ""
    초인종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문을 열었습니다. “딩동 딩동.” “ 어....어머니.!” 시골에서 홀로 사시는 시 어머님이 아무 연락도 없이 올라 오셨습니다. 허리가 휘도록 이고 지고 오신 보따리 속엔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 말린거며 젓갈들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. “무거운데 뭘 이렇게 많이 싸 오셨어요......." “갸가 정심은 굶고 안 살았나...... 내사 마 퍼줘도 갸 볼 낯이 엄따." 가난한 살림에 자식을 다섯이나 줄줄이 낳아 기르느라. 자식들의 배를 곯린게 두고두고 한이 된다는 어머니. 겉보리까지 닥닥 긁어 밥을 지어도. 어머니의 밥솥은 늘 자식들의 왕성한 식욕보다 작았습니다. 도시락이 모자란다 싶으면 갸가 동생들 다 챙겨 주고 지는 그냥 가뿐지는 기라...... 심지가 깊어서 그렇지 돌맹이도 삭일 나이에 을메나 배가 고팠겠노,,,,,, 어머님이 보따리를 풀어 놓으시며 한숨처럼 중얼거리셨습니다. 남편은 가난한 집 5형제 중의 맏이였습니다. 맏이라고 동생들한테 다 양보하고 허구헌날 굶으며 공부한 아들에게. 어머니는 20년이 지나도록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씻을 길이 없다고 하시며, 매번 눈물을 보이셨습니다. “에그. 내가 주책이다.” 그날 저녁 나는 흰 쌀밥에 굴비 구이에 코다리 조림 까지. 어머니가 가져 오신 찬 거리로 진수 성찬을 차렸고. 어머니는 연신 생선살을 발라 아들 수저에 얹어 주셨습니다. “아참, 어머니도 좀 드세요.” “내사 마 니그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기라. ” 다음 날 어머니는 며칠 더 계시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. 한사코 자식 며느리한테 짐이 되기 싫다시며 집을 나섰습니다. 그 고집을 꺽을 수 없는 나는 어머니를 기차역까지 배웅해 드렸습니다. 그런데 표를 받아들고 플랫폼으로 나가시려든 어머니가 가방 속에서 신문지로 돌돌 싼 꾸러미 하나를 꺼내 불쑥 건네 셨습니다. “이게 뭐예요. 어머니?” “암말 말고.갸 맛난 것 좀 많이 사 주구래이.” 신문지에 여러 겹 돌돌 말린 그것은 놀랍게도 돈뭉치였습니다. “니도 자식 키워보면 알겠지만 에미 맴이란게 다 그란기라. 내가 갸 배곯린 거 생각하믄 안적도..... 밥이....목에....걸려서리......” 자식들이 드린 알량한 용돈을 한 달에 만원도 모으고 이만 원도 모으고 해서 만들었다는 돈 백만원. 나는 울컥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어머니의 굽은 등을 바라 보며 가슴속 눈물을 삼켰습니다 -옮겨온 글-